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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4장1~17절)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2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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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4장1~17절)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daily word, #새벽예배, #매일성경, #큐티,,#새벽기도, #성경낭독, #아침묵상, #성경적세계관, -------------------------- (에 4장 1~17절)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찬 183장) 사람이 생사의 문제가 달린 극한의 위기에 처하면 허둥지둥 하다가 어이없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극도로 놀라거나 무서움에 휩싸이게 되면 근육도 추축되고 혈관도 수축되어 혈액공급이 줄어들기에 핏기가 없이 창백해 지고요, 또 노르아드래날린이 분비됨으로서 전신의 말초혈관이 수축되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면서 눈동자가 크게 열립니다. 극도의 공포에 쌓이게 되면 몸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것이 바로 우리 몸의 반사작용 때문이죠. 오늘은 극도의 공포에 처한 사람이 보여주는 의연한 행동과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 이제 하만의 조작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내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몰살하고, 재산을 빼앗아도 좋다는 공문서가 수산에도 전달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 일을 알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 광장에 나가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이 일하는 왕궁 앞까지 행진하며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왕의 엄중한 명령이 도착한 도시마다 유다인들은 금식하고 통곡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썼습니다. 이것은 유다인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죠. 이런 와중에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왕궁에 있는 에스더였습니다. 에스더는 영문을 모르고 모르드개에게 새옷을 보냈지만 모르드개는 받지 않았고, 이번에는 하닥을 불러 내막을 조사하고 오라고 시켰더니, 모르드개는 지금 유다인들이 하만으로 인해 몰살의 위기에 처했다고 알렸습니다. 더불어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이 위태로운 상황을 왕 앞에 나아가 보고하고 도움을 간청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법은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않았는데 왕 앞에 가면 처형당하는 무서운 법이 있었습니다. 왕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처형을 피하는 유일한 경우는 왕이 금괴를 내밀 때 뿐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이 때는 왕이 에스더를 안 찾게 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고요, 이미 에스더가 왕후가 된 지 5년이 흘렀기 때문에, 그녀에게 관심이 떠나간 상황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왕에게 나아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모르드개가 다시 보낸 회답은 이렇습니다. “네가 왕궁에 있다고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네가 만일 잠잠해도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면 안녕과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망할 것이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그러자 에스더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수산성에 있는 모든 유다사람들이 저를 위해 금식해 주십시오. 저와 제 하녀도 금식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비록 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제가 왕께 나가겠습니다. 제가 죽게 되면 죽겠습니다.”그래서 위기에 처한 수산성의 유다인들은 모두 금식하며 기도하게 되지요.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을까요? 이 말씀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보낸 회신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서 홀로 목숨을 건지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것은 성도가 위기가 왔을 때, 나는 상관없다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지구상의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혹시 생활습관 속에서 자연 환경을 파괴시키는 행동은 없는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행동이 기독교인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주님께서 허락한 소중한 가정과 교회에서, 나의 잘못된 습관이나 말투가 은혜가 안 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바로 세상속에서,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책임의식아닐까요? 이런 책임있는 의식들이 하나둘씩 모이면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입니다. 모르드개에게는 만약 에스더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으면 유다는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불순종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꺾이는 것은 아니죠. 원래 하나님의 사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옮겨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을 때, 힘들지만 순종하며 감당하면 그것은 복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 쓰임받는 영광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가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는 차질이 없다는 것을 모르드개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무슨 직분이든지, 어떤 위치나 영향력을 주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고, 바로 지금 이 위기의 때가 아니겠느냐겠느냐고 에스더에게 권면한 것입니다. “네가 황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가 생각해 볼 때는 분명이 이 때를 위해 하나님께서 너를 황후의 자리에 앉게 한 것이다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높여 세운 것도 목적이 있고요,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로 에스더를 세운 것도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리와 위치에는 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먹고 남을 정도의 돈을 벌게 하셨다면 목적이 있을 것이요, 남들보다 재능이 있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요, 심지어 많은 실패와 아픔의 경험을 갖고 있다면 그것 역시도 선한 일에 쓰임받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목적없이 굴러다니는 돌맹이가 없듯이,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지음받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위기를 만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겠느냐고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만 홀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서로 주님 안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영적인 한 가족이에요. 또한 내 삶에는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냥 벌어지는 일은 없고,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이 때를 사는 것에는 바로 이 때를 살라고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누가 알겠느냐 바로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를 이 때를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오늘도 삶의 의미를 찾아서 선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성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이 시대를 살고, 우리에게 직분과 직위와 재능을 주신 것에는 목적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이 때를 위해서 우리를 여기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게 하신 줄 압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시고, 그래서 오늘 하루도 의미있게 보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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