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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6일 화요일 새벽3:30 | 새벽기도 2343일째 설교 2343 407 250506 화 삼상18:24-27 제목: 의인에게 인생의 위기는 축복으로 가는 초고속 방편이다 본절에서 우리는 아주 놀랍고도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미 자기의 힘으로 다윗을 제거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사울은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다윗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17,21절). 부마가 될 수 있다는 조건은 그것을 위해 더없이 좋은 미끼였다. 하지만 다윗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더 없는 인생의 위기였다. 만일 왕의 요구를 물리친다면 부마가 될 수 있는 길은 영원히 막힌다. 골리앗을 이겼지만 공주를 내어주지 않은 책임도 사울에게서 다윗에게 넘어갈 수 있다. 반면 이것을 쉽게 받아들였다가는 그 자신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아마 이를 두고 진퇴양난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이러한 일을 종종 만난다. 인생의 모진 풍파가 느 닷 없이 몰려온다. 백번을 양보해서 거기에 다소간의 욕심이 작용했다는 것을 인 정하더라도 그 폭풍의 크기를 볼 때 욕심 때문이라고 하기 어려운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에게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바로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를 사울이 요구한 것보다 두 배나 더 많게 바쳤다는 것이다. 물론 본문은 다윗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를 벨 수 있었는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성경은 이와 같이 결정적인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침묵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칠 때 여부스 사람들이 큰소리 쳤으나 다윗이 점령하여 다윗성이 되게 한다. 물론 다윗의 용사들이 수구로 들어갔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러나 그 자세한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삼하5:6-10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 하더라/9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같이 일의 결과가 어떤 과정을 거치든, 어떤 우여곡절을 거치게 되든 바로 의인 앞에 불어닥친 풍랑은 의인을 집어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인이 걸어가야 할 믿음의 행보, 복의 행보를 초고속으로 이끌어 주는 방편이 됨을 시사해 준다. 우리는 흔히 위기를 만날 때 '이것으로 인생이 마지막이구나' 하고 좌절하기 쉽다. 이런 때는 '하나님만을 믿고 신실히 살아온 나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나'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위기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감당치 못할 고난은 주시지 않는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 위기에서 다윗이 얻은 것이 부마의 자리뿐이 아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을 제어한다는 것은 곧 왕으로서 자질과 재능,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을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세우라고 하실 때 그 목적이 블레셋을 무찌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삼상9: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따라서 당시 사울이 블레셋을 확실히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윗이 블레셋을 제어했다는 것은 백성들이 다윗을 더욱 필요로 하고, 사랑하며, 왕으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고난은 항상 믿음과 복의 진보를 위한 거대한 방편이요 에너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66:12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요셉도 이러한 풍랑을 타고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초고속 행진을 하였으며, 다니엘과 모르드개 역시 그러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닥친 풍랑을 원망과 좌절, 한숨의 눈길로 바라보지 말고 다윗과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고 당당하게 뛰어드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