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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검은 머리 (1964)

노래 이야기 한 폭력 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의 내부 규율 중에는 부정한 여인을 발견할 시에 얼굴에 칼로 상처를 내고 부정을 저지른 남자와 함께 살도록 한다는 것이 있지요. 조직의 두목인 '검은 머리' 동일이 만든 이 규율은 결국 자신을 옭아맬 부메랑이 되어 버립니다. 마약 중독자인 만호의 계략으로 아내인 연실이 만호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지요. 규율을 지키라는 부하들과 아내를 보호하려는 동일, 결국 두목 몰래 연실은 부하들에게 끌려가고 규율대로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긴 채 쫒겨납니다. 검은 머리로 상처를 가리고 사창가에서 몸을 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연실, 카메라는 비 오는 밤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슬픔에 빠진 연실의 모습을 담아내고 이 때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죄 없는 내 마음에 멍을 들이고 추억은 안개처럼 사라져 갔네 뒷골목 그늘에서 눈물 흘리며 검은 머리 쓰다듬는 여인이지만 태양이여 나에게도 비춰주소서 세상길 가시밭길 험하다 해도 이다지 거칠 줄은 진정 몰랐소 병들은 몸과 마음 뒷골목에서 내일 없는 희망 속에 살아가지만 태양이여 나에게도 비춰주소서" 배우 이혜영 씨의 부친이자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괴이한 영화 감독으로 꼽히는 고 이만희 감독의 영화 '검은 머리'는 지금까지 발표된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른 특이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9년 부산영화제에서는 이 '검은 머리'가 재상영되면서 천재 감독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요. 극중 '검은 머리' 동일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 속에서 괴로워하며 결국 영화의 마지막엔 만호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어머니와 결혼하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게 되는 오이디푸스의 신화 속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영화와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이만희 감독의 영화 속에서는 늘 자신의 틀 안에서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벌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두 눈을 뽑아버린 오이디푸스처럼 말이지요. 1964년 국도 극장에서 개봉해 큰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문정숙이라는 인물을 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 영화 역사상 배역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여배우라는 칭송을 받는 문정숙 선생님의 명연기가 빛을 발한 작품이지요. 1960년대 초 가장 유명한 여배우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최은희 선생님을 먼저 꼽을 것입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2018년 소천하실 때까지 우리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여배우로 자리매김한 최은희 선생님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어둡고 슬픈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 신인 배우로 문정숙 선생님이 등장하게 됩니다. 1962년 영화 '오발탄'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후, 1964년 개봉된 이 '검은 머리'에서는 문정숙 선생님의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골목을 서성이는 거리의 여인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는데,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곡 '검은 머리' 또한 그녀의 목소리로 녹음되었지요. 사실 '검은 머리'라는 제목만으로는 참 생소한 노래일지 모릅니다. 저 또한 오늘까지 이 노래를 부른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유명 가수의 작품이 아닌 배우가 부른 영화의 주제곡이니 더욱 그럴 만도 하지요. 영화의 스토리를 모른 채로 가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어둡고 암울함만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준비하면서 이 노래를 부른 원곡 가수가 배우 문정숙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전문적으로 노래를 하지 않는 가수가 이토록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지요. 2000년 소천하시기 전까지 크고 작은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던 문정숙 선생님의 영화 인생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노래가 바로 '검은 머리'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