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усские видео

Сейчас в тренде

Иностранные видео


Скачать с ютуб 조선의 외교의례 2편 в хорошем качестве

조선의 외교의례 2편 2 года назад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savevideohd.ru



조선의 외교의례 2편

일본에 사신으로 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에서 많은 환영을 받았고, 일본에 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 문인들 사이에서는 통신사의 글이나 그림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사신은 한양까지 올라올 수 없었지만, 조선의 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잠시 소강상태였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수도인 에도로 보내졌습니다. 주로 일본 막부의 관백이 교체되었을 때 이를 축하하기 위한 사절을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되어서 조선은 태종 13년부터 1868년까지 총 20차례에 걸쳐서 통신사 또는 사신을 파견하였습니다. 일본에 간 우리 사신도 일본의 예법에 따라서 국서를 전달했는데, 그 방법이 복잡하지 않아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9개의 문을 통과하는 절차가 힘들었고, 3층으로 된 전각 가장 위에 가림막을 한 안쪽에 있는 관백에게 조선 사신은 중층에서 사배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중국으로 간 사신의 기록인 ‘연행록(燕行錄)’과 일본 통신사의 기록인 ‘해행총재(海行摠載)’ 등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간에는 조선의 의례에 대한 부분만 알아보겠습니다. ‘수인국서폐의’는 이웃 나라의 폐백을 받는 의례로 예전에 창경궁에서 재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편 조선에 온 일본과 같은 인국 사신들에게 베푸는 연회인 ‘연인국사의’도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 정종대에는 일본 사신에게 연향을 베푼 이후, 일본 사신에게 군기감에서 불꽃놀이도 벌여 구경시켜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예조판서가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괜찮아 보였던 교린 관계가 임진왜란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자료 사진 출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민속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청 #알쓸신잡 #조선시대 #오례의 #빈례 #외교 #의례 #사절단 #사신 #통신사 #임진왜란 #수도 #에도 #관백 #수인국서폐의 #예조정랑 #시신 #통사 #국서 #폐백 #창경궁 #예법 #연행록 #해행총재 #연인국사의 #인국 #연향 #연회 #사옹원 #제거 #제조 00:00 오프닝 00:30 일본에서의 조선통신사 01:46 수인국서폐의 03:23 사신의 접대 방법의 의의 04:12 조선통신사의 기록 04:29 연인국사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