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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3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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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태복음#거짓선지자 #예수그리스도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7:15~20) 15절 거짓 선지자들은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니라.//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좁은 문을 잘 선택하고 좁은 길을 가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좁은 문 좁은 길로 나타내셨습니다. 신자라면 거의가 율법을 잘 지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것을 좁은 문 좁은 길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넓은 문 넓은 길이며 곧 멸망의 길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찾지 않고 배척하는 예수님 자신이 좁은 문이요 좁은 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15//13~14절의 좁은 문 넓은 문의 말씀과 16~20절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의 다리 역할을 하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바른길로 인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좁은 문과 길은 우리가 찾을 수 없습니다. 문과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그 영을 자기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그 문을 들어가게 하시고 그 길로 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좁은 문 좁은 길을 이야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고 이 세상에서 축복과 저주를 혼합하여 섞으면서 누가 봐도 좁은 문 좁은 길이라서 생명의 길처럼 보이도록 제시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교묘한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넓은 문 넓은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넓은 문 넓은 길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사람하기 나름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행위 주의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넓은 문 넓은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 언약의 완성이며 승리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율법주의//먹고 마시는 음식 규례와 월삭과 안식일과 같은 날과 절기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림자인데도 열심과 행함을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꾸며낸 겸손, 천사숭배, 무언가 본 것을 의지하여 과장하는 것입니다. 금욕주의//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금욕주의의 길로 가야 좁은 문 좁은 길이며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완성을 믿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탈을 쓰고 오기에 양들이 속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탈을 쓰고 오지만 그 안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이리들이 어디서 나옵니까? 교회 외부에서도 오지만 교회 안에서도 나온다고 합니다. 똑같이 사도가 전한 복음을 들었는데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게 하는 자들입니다. 양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안을 외치는 자들이며 땅의 것 물질적인 것에 탐욕을 가진 자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외침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평안, 평강, 행복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그것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라는 이 땅의 것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언약의 성취는 십자가에 피 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에서 그 절정을 이루셨습니다. 언약과 상관없이 평안을 외치던 거짓 선지자들은 십자가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난 것처럼 교회 안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그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피로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면 교회에 재정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탐심을 위하여 지어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나 축복이라는 것은 사람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장로교는 구원은 은혜이지만 축복과 상급은 사람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면서 상급의 차등을 위하여 경쟁을 부추깁니다. 이것이 바로 교인들을 자기 이득의 재료로 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좁은 문 좁은 길로 제시하지 않는 모든 교훈들이 다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막아 놓은 생명 나무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열리게 되었음을 부인하는 모든 것이 거짓 선지자의 특징입니다. 생명 나무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자기 육체를 휘장과 같이 찢으셔서 새롭고 산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선악과를 먹는 것처럼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만 이해하고 지켜야 구원에 이른다는 식의 모든 가르침이 거짓 선지자의 교훈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보물인 진리를 땅의 것으로 만들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삶의 모든 것을 걸게 만드는 이방인과 같은 자들이며 이 세상의 축복과 저주와 구원을 받고 못 받음이 인간의 열심과 행함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합니다. 또한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예수님의 대속과 의를 인간의 율법의 행함의 의를 전하는 외식하는 자들과 거짓 선지들입니다. 16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거짓 선지자는 열매로 거짓 선지자인 줄 알리라가 됩니다. 거짓 선지자도 열매로 알지만 우리가 참된 신자인지 아닌지도 열매로 알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열매가 무엇이냐의 문제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어떤 열매가 나오는지요? 거짓 선지자는 구약에서 무엇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까? 애굽에서 구속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즉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아 나왔는데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신약에서는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이며 다른 영이며 적그리스도임을 보았습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어떤 나무인지 알게 됩니다. 나무를 심고 몇 년이 지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어떤 나무인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열릴 리가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가가 열리지 않듯이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는 그 열매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열매라고 하면 주일성수, 헌금, 전도, 봉사 이런 것을 많이 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며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다수의 신자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 열매라는 것들 안에 시기와 경쟁과 질투가 들어있습니다.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저주를 받지 않으려고, 하늘에서는 구원의 복을 받으려고 하는 탐심으로 가득 차서 열심과 행함과 정성으로 종교의 틀을 만듭니다. 주의 이름으로 성전도 짓고 주의 이름으로 선교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세상을 정복하자는 구호들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만 붙이면 그 속이 어떠하든 주님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으로 엄청난 일을 했다고 해도 불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열매가 무엇인지 성경에서 확인합니다. 이 말씀을 한절로 요약한 곳이 시편 80: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이사야 5:7절을 보시면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셔서 약속의 땅에 심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열매를 바랐습니다. 그 열매는 정의와 공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라 포학과 부르짖음만 나왔습니다. 그 결과가 이사야 5:8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땅이기에 부동산 투기를 하면 안 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투기하여도 편법을 쓰고 세금을 내면, 얼마든지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기에 부동산 투기하면 안 되는데도 이들은 부동산 투기를 한 것입니다.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나라를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이 땅 가운데서 살아남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거짓 선지자들이며 이러한 자들의 말에 속아서 따라가는 자들도 자기 안의 탐심으로 인하여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맺힌 열매는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어 악한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 악한 열매가 어떤 모습입니까? 자신들은 회개했다고 합니다. 잿물로 씻고 비누로 씻었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죄악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회개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으니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았고 바알들을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헐떡거리며 달려온 길이 누구를 사랑한 것입니까? 발정기의 짐승들처럼 우리의 본능은 이방 신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방 신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아주 분명하여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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