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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궁극적인 목표, 그리고 궁극으로 나아가는 보살의 삶은 모든 생명들, 모든 존재들이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열반에 이른다... 그럼 열반이 무엇입니까? 태어남이 부서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청정한 삶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친 것이고 다시는 얽매여서 살아지지 않는 삶입니다. 초기경전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열반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두 가지의 열반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유여열반, 남음이 있는 열반의 세계와 남음이 없는 무여열반의 세계가 있다. 유여열반이란 무엇인가? 여기 수행승이 번뇌를 파괴하고 해야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짐, 업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고 모든 존재의 속박을 끊어서 궁극적인 지혜에 의해서 마침내 해탈을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직까지 몸으로서의 눈귀코혀몸, 다섯가지 감관은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에서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즐거움과 불쾌함을 경험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에게는 탐욕이 소멸되고 진애가 소멸되고 무지가 소멸되었는데 그러한 다섯가지 감관이 남아 있기때문에 남음이 있는 열반의 세계, 유여열반이라고 한다. 바로 육신으로 부처님을 이루었던 깨달음의 부처님, 몸을 가진 부처님이 바로 유여열반입니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고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운, 청정한 삶이지만 이 몸이라는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이 몸이라는 감각기관에서 쾌적함과 쾌적하지 않음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은 끊임없이 분별해 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걸림이 없는 상태, 그것을 유여열반이라고 말합니다. 파자소암(婆子燒庵)이라는 고사에서 말하듯이 아름다운 여인이 품에 안겼을 때, 참 바위에 고목이 기댄 거와 같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열반에 이른 상태, 열반에 이른 상태에서는 따뜻한 여인을 따뜻한 여인으로 그대로 느낍니다 몸의 감각이 살아있기 때문에 쾌적함과 쾌적하지 않음 즐거움과 즐겁지 않음을 몸은 신호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거기에 얽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속박에 매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여열반 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아름답게 느낍니다. 쾌적함은 쾌적하게 느낍니다. 부드러움은 부드러움으로 느낍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탐착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쾌적하고 아름답고 즐거우면 거기에 머물려고 합니다. 유여열반은 얽혀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합니다.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삶 입니다. 저기 멋있는 것이 있다... 해서 내가 거기에 끌려가야 될 이유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업의 마음에서는 아름다움이 있으면 끌려가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느낍니다. 그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무여열반은 무엇인가?... 무엇이 무여열반인가, 번뇌를 파괴하고 해야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속박을 끊었으며, 궁극의 지혜에 해탈했다. 이제 이 몸이라는 한계가 벗어났을 때, 그에게 느껴지는 그러한 것은 없다. 모든 몸의 느낌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것을 무여열반이라고 한다. 바로 법신(法身)이 되어서, 육신의 한계를 풀어버린 부처님의 세계가 되겠습니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삼계의 모든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속박에서 벗어남은 '속박' 전체를, 바로 내 안으로 자유롭고 걸림이 없게 된 것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나서, 별ㅡ 이상한 세계로 뿅ㅡ 하니 숨어들어가 사라져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열반을 청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완벽하게 청정한 삶이기 때문에 속박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최상의 호의를 베풀고 최상의 은혜를 내려 줄 수 있는 삶입니다. 바로 무여열반입니다. 보살의 길을 걷는 사람들, 깨달음을 향하는 존재들, 보살의 수레를 타고 나아가는 사람들, 모든 존재들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한다. 무여열반에 들게 함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 절대적인 대상으로서의 중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수행에서 중생으로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 바로 나와 같은 중생, 내 마음의 한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수많은 모습 가운데 중생의 모습이 그 순간 나타난 존재일 뿐입니다. 스스로가 함께 나와의 관계 속에서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일조를 했습니다. 나의 삶에 부닥치는 모든 존재들이 탈바꿈을 해서 보살의 길을 걷고, 열반에 이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함께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중생도 본래 없었습니다. 나와 같은 보살들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내가 모든 존재를 보살의 열반에 들게 하였더라도, 내가 들게 한 중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끝없이 호의를 베풀고 은혜를 베풀지만 부처님이 나를 열반에 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일을 하신 것이고 나는 보살의 일을 발원하고 걷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경현_불교이야기 #김경현_금강경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