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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309 광통교 교각의 신장석 - 신덕왕후를 향한 태종 이방원의 보복 5 лет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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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309 광통교 교각의 신장석 - 신덕왕후를 향한 태종 이방원의 보복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은 규모와 격식을 제대로 갖춘 왕릉으로 무인석과 문인석, 무덤을 지키는 수호 동물도 생동감 있게 만들어져 있다. 봉분은 그 권위를 위해 병풍석을 갖췄다. 봉분을 둘러싼 병풍석에서 신장석을 볼 수 있다. 섬세한 구름 문양과 정교한 신인의 모습이 담긴 신장석이 조선 최초의 돌다리인 광통교 교각에서도 발견된다. 태조 이성계가 죽자 태종은 자신의 계모이자 정치적 경쟁자였던 신덕왕후의 무덤을 현재의 정릉으로 이장해 버린다. 4대문 안에 무덤을 둘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이장된 신덕왕후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고, 초라한 봉분과 이장 당시의 석물 두개만 남아있다. 왕후 무덤의 나머지 돌들은 광통교의 교각과 양쪽의 석벽에 사용됐다. 조선 초기의 정치적 암투와 복수가 최고의 왕릉에 쓰였던 돌을 한낱 다릿돌로 주저앉힌 것이다. 그나마도 일부 신장석은 거꾸로 쌓였다. 태종의 보복은 철저했다. 길이보다 폭이 넓은 광통교, 청계천의 명물이자 궁궐로 가는 가장 넓은 길이었던 다리 아래에 정치적 암투와 보복의 비사가 새겨져, 60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태종#계모 #신덕왕후 #무덤 #이장#무덤 #신장석을 #청계천 #광통교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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