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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는 있는가, 없는가 윤회 논란의 정리 2 дня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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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는 있는가, 없는가 윤회 논란의 정리

삶과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중요한 의문을 던지는 문제이다. 윤회에 대한 논란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존하던 당시부터 시작해서 그 후의 모든 시대에 항상 있어왔으며 최근에도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불교계 내에서도 ‘윤회는 없다’라고 적극 주장하는 스님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스님들이나 불자들은 윤회를 믿고 있다. 00:00 윤회는 있는가, 없는가 01:04 윤회의 개념 02:25 핸두교와 불교의 윤회 차이 03:40 윤회는 조건발생 06:00 윤회의 비유(씨앗) 08:27 윤회의 입증 11:27 윤회의 부정은 도덕의 부정 12:52 윤회는 믿음과 체험의 영역 14:00 요약 힌두교의 윤회와 불교의 윤회는 어떻게 다른가? 힌두교의 윤회는 아트만(Ātman, 불멸의 자아)이 몸 속 심장 안에 있어서 사람이 죽고 나면 이 아트만이 다시 새로운 몸을 받아 재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불교에서는 무아(anātman)를 설하기 때문에 아트만이라는 불멸의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연 즉 원인(因)과 조건(緣)에 따라 정신과 물질 즉, 오온(색, 수, 상, 행, 식)이 생겨나고 소멸할 뿐이라고 본다. 즉, 윤회는 인정하되 이것은 조건발생일 뿐이며 ‘윤회하는 불멸의 자아’, ‘윤회하는 자’는 없다는 것이다. 불교계에서 윤회를 부정하는 스님이나 불자가 있는 것은 이 연기(緣起)와 무아(無我)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경의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불교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의 수백개의 경전들과 수많은 대승불교경전들에서 모두 한결같이 윤회와 무아를 설하고 있다. 윤회는 조건발생 즉, 연기(緣起)이다. 윤회는 무조건 있는 것인가? 아니다. 윤회는 조건발생이기 때문에 무조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없는 것도 아니다. 업(원인)과 번뇌(조건)가 있으면 윤회는 있다. 그러나 업과 번뇌라는 원인 · 조건이 없으면 윤회는 없다. 업이 소멸되고 번뇌가 소멸되면 윤회는 종식되고 만다. 더 이상 태어남은 없다. 이것이 해탈이다. 윤회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윤회는 개인적인 체험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체험이란 숙명통(宿命通)과 천안통(天眼通)이다. 숙명통은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의 능력이고, 천안통은 하늘의 눈(천안, 天眼)으로 중생들의 태어남과 죽음을 보고 업과 과보를 꿰뚫어 보는 지혜의 능력이다. 해탈한 성자들은 이 능력을 얻는 것이고 이것은 내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남에게 보여주거나 입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후생이 없다면 평생 남에게 보시하고 자선을 베풀고 도덕적 규범인 계율을 지키며 검소하게 살면서 선업을 지은 사람과, 평생 방탕하게 감각적 쾌락에 젖어 살고 악행을 일삼은 사람, 양자는 죽음으로서 동일한 결과가 되고 만다. 선행이나 악행이나 동일한 결과에 이른다면 왜 선행을 해야 하는가? 선행을 권장하는 것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 것이다. 스님들이 가정과 재산을 버리고 출가하여 평생동안 열심히 수행하고 노력하는 것도 허사가 되고 만다. 평생 수행한 스님이나 전혀 수행하지 않고 방일하게 산 사람이나 죽음으로 동일한 결과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수행을 해야 하는가? 수행자들은 평생 아무 의미없는 헛고생을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선행의 결과도 분명히 있으며, 수행의 결과도 분명히 있다. 선업이 무르익으면 반드시 행복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수행이 무르익으면 반드시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윤회는 숙명통과 천안통을 얻은 성자들의 경우에는 체험의 영역이다. 그러한 능력을 얻지 못한 범부들의 경우에는 믿음의 영역이다. 그것은 남에게 보여줄 수 없고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회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믿지 못한다고 부정하고 배척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다. #윤회 #삼사라 #해탈 #연기 #무아 #힌두교 #아트만 #이안스티븐슨 #숙명통 #천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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